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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기

시 / 홍순천 / 허물 외 4편

시 / 홍순천

 

허물

 

몸피를 키우기 위해

뱀들은 허물을 벗어

나뭇가지에 널었다.

영혼을 키우기 위해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허물을 벗은 적이 있었나?

몸피만 늘리고

영혼의 허물을 벗지 못한 채

나이만 더한다.

단 한 번이라도

허물을 벗어

영혼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랭이 질

 

물러설 때 물러나고

나아갈 때 나아가는

지혜가 없다면,

싸울 때 싸우고

품어야 할 때 품지 못해

세상은 온통 피투성이다.

그랭이 질의 지혜가

절실하게 그리운

아사리판이다.



물속에 유배된 버드나무

 

갈증이 심한 버드나무는

늘 물이 그리워,

스스로를 물속에 유배했다.

허망한 욕망이 불러온 갈증은

물속에 뿌리를 내려도

타는 갈증을 잠재울 수 없었다.

봄바람 불고

개구리가 노래를 불러도

버드나무의 갈증은 여전히 타오른다.


 

우수雨水 천반산天盤山

 

겨우내 쌓인 눈이

봄비에 녹아 어우러진 흙탕물이

천반산을 끼고 용담호龍潭湖로 달린다.

자욱한 봄안개에 걸음을 늦추면

반역죄로 죽도竹島에 내몰린 정여립의

고독한 외침이 쩌렁쩌렁

이 땅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백성이라고.

왕정의 폭력은 언제쯤 끝날까?

당연한 권리가 신화로 느껴지는

요지경 세상이다.

비 오는 날 천반산을 지나며

머릿속이

하! 복잡하다.



 

꽃샘추위

 

자유로운 봄바람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

누구도 가두지 못한다.

세월을 낚는 어부도

자유로운 바람을

가둘 수 없다.

자유로운 봄바람은

차가운 지성으로

기어이 봄, 꽃을 피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