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이 빛나는 밤에] 이면 없는 세상
이시백 / 이야기 보부상
스스로 광대를 지향하는 임진택 소리꾼의 말씀으로는, 그 소리 선생께서 이르기를, ‘소리에는 이면’이 있어야 한다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절간의 뒷마당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이면은 사람에게도 저마다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김정일이 잠옷 차림으로 그 아들 김정남과 닌텐도 게임을 즐기며, 전위적인 영국의 사이키델릭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열광적인 팬이라는 사실도 이면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페르소나라는 가면으로 살아가지만, 사실은 해면 아래로 숨겨진 이면의 엄청난 빙하들로 움직여지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라는 이면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거리감은 그런 관계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꾸게 합니다. 가면을 벗고, ‘쌩얼’을 마주할 관계의 대상에 목말라 하는 것은, 이면을 공유하며 가능해집니다.
대권을 손에 쥔 이들이 저마다 은방울, 금방울을 손가락마다 매달고 흔들어대는 정치적 심복들을 두고도, 각별한 측근을 따로 두는 '비선'이라는 것도 그러한 욕망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개는 아주 최측근에 해당하는 그 사람들이,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가까이 두는 데도 ‘이면 없는’ 관계의 밀착을 보여줍니다.
이면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해와 타산을 넘어 ‘인간적’ 관계를 함께한다는 착각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조직을 강조하는 군대나, 기업, 권력 조직, 특히 겉으로 드러내서는 곤란한 결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불법 카르텔 조직이나 조폭들도 그러한 ‘인간적’ 교감을 중히 여기지요.

문제는 이러한 집단이야말로 태생적으로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피차 잘 알고 있으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서로를 불안하게 여기는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의 배신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인간적’ 보험 장치를 마련해 두지요. 예를 들자면, 자신의 땀에 젖은 구두를 벗어 따른 양주를 함께 마시고, 양말까지 쭉 짜서 마시면 더욱 결속감이 강해진다고 믿지요.
평소에는 근엄하기 짝이 없는 법을 논하는 이들이 으슥한 별장에 모여, 여인들을 성적으로 공유하며 이를 은밀히 카메라에 담아둔 행각도 바로 이런 ‘인간적’ 이면을 없애는 결속을 위한 장치라 하겠습니다.
불법과 권력이 난무하는 조직일수록, 이러한 ‘이면 없는’ 인간적 관계를 중하게 여기니, 소리나 사람이나 이면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 선생의 말씀은 지당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인 우리는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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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이 빛나는 밤에] 이면 없는 세상
이시백 / 이야기 보부상
스스로 광대를 지향하는 임진택 소리꾼의 말씀으로는, 그 소리 선생께서 이르기를, ‘소리에는 이면’이 있어야 한다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절간의 뒷마당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이면은 사람에게도 저마다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김정일이 잠옷 차림으로 그 아들 김정남과 닌텐도 게임을 즐기며, 전위적인 영국의 사이키델릭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열광적인 팬이라는 사실도 이면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페르소나라는 가면으로 살아가지만, 사실은 해면 아래로 숨겨진 이면의 엄청난 빙하들로 움직여지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라는 이면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거리감은 그런 관계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꾸게 합니다. 가면을 벗고, ‘쌩얼’을 마주할 관계의 대상에 목말라 하는 것은, 이면을 공유하며 가능해집니다.
대권을 손에 쥔 이들이 저마다 은방울, 금방울을 손가락마다 매달고 흔들어대는 정치적 심복들을 두고도, 각별한 측근을 따로 두는 '비선'이라는 것도 그러한 욕망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개는 아주 최측근에 해당하는 그 사람들이,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가까이 두는 데도 ‘이면 없는’ 관계의 밀착을 보여줍니다.
이면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해와 타산을 넘어 ‘인간적’ 관계를 함께한다는 착각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조직을 강조하는 군대나, 기업, 권력 조직, 특히 겉으로 드러내서는 곤란한 결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불법 카르텔 조직이나 조폭들도 그러한 ‘인간적’ 교감을 중히 여기지요.
문제는 이러한 집단이야말로 태생적으로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피차 잘 알고 있으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서로를 불안하게 여기는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의 배신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의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인간적’ 보험 장치를 마련해 두지요. 예를 들자면, 자신의 땀에 젖은 구두를 벗어 따른 양주를 함께 마시고, 양말까지 쭉 짜서 마시면 더욱 결속감이 강해진다고 믿지요.
평소에는 근엄하기 짝이 없는 법을 논하는 이들이 으슥한 별장에 모여, 여인들을 성적으로 공유하며 이를 은밀히 카메라에 담아둔 행각도 바로 이런 ‘인간적’ 이면을 없애는 결속을 위한 장치라 하겠습니다.
불법과 권력이 난무하는 조직일수록, 이러한 ‘이면 없는’ 인간적 관계를 중하게 여기니, 소리나 사람이나 이면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 선생의 말씀은 지당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인 우리는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그냥 인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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