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서울에서 하는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대통령을 뽑아놓고 6개월 만에 퇴진하라고 촛불을 드니 이런 미친 짓도 없다. 이럴거면 왜 선거를 한 건지.... 조바심일 게다. 이 엄중한 세월에 이렇게 가다간 모두 나락에 굴러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랄까.
서울에서 촛불집회를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 속에서 구호도 외치고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고 했지만 내 마음은 깊은 슬픔에 짓눌려 있었다. 정확한 집회 장소를 몰라 경복궁쪽 광화문으로 접근했는데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시민들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초대 가수인지 뭔지 무대에서 계속 팝송만 불러대는데 어마어마한 스피커 소리가 사람을 두들겨 패는 듯했다. 살다 살다 이렇게 큰 스피커는 처음 본다. 스피커는 두 세트였다. 하나는 자기네 집회용이고, 또 하나는 촛불 쪽으로 돌려놓아 명백히 방해용이었다. 주로 <문재인 이재명 구속>과 <주사파 척결>을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촛불 시민을 ‘매국 세력’, 자신들을 ‘애국 세력’으로 부른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 팝송이 어떻게 애국이 되는 건지 잘 연결이 안 되었지만, 아무튼 어떤 방식으로든지 애국하겠다는데 이해하기로 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13억의 중국 공산당을 대적하자면 글로벌 파워 미국과 자기네 신앙의 선조 이스라엘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믿는 것이겠지. 그렇긴 하더라도 된장국만 먹고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 분위기를 견뎌낼 수 없었다.

나라가 완전히 두동강나고 말았다. 민주당이 저리 무능하고 여당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두 진영 간의 화합은 불가능해 보인다. 화합은커녕 손에 총이라도 쥐여 주면 전쟁도 불사할 것 같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기 전에 여의도 국회의원 대회의실에서 상영된 <돌들이 말할 때까지>라는 제주 4.3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갔다. 내년에야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영화이다. 4.3으로 인해 징역을 살고 나온 할머니들에 대한 최초의 인터뷰이다. 할머니들의 알아듣기 힘든 발음 사이로 흘러나오는 원한이 가슴을 후벼팠다.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의해 죽거나 잡혀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분들이다. 70년이 지나서 재심을 청구했는데 결과는 ‘공소기각’이다. 재판기록이나 공소장 같은 기록이 아무것도 없어 ‘무죄’도 못 때린다나. 그냥 잡아다가 형무소로 집어넣었는데 다행히 입소할 때의 신상기록이 있어 살아계신 분들을 찾아내 재심을 신청한 것이다. 기록에 나와 있는 사람만 2,500명이다.
상영회가 모두 끝나고 국회 정문 옆 작은 숲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무 밑 벤치에 갔다가 마침 영화를 보러 오신 4.3 생존자 어르신을 만났다. 함께 담배를 태우며 그날의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경찰에 의해 아버지와 위로 두 형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13살이었다. 갈 데가 없어 산사람들을 따라 한라산으로 올라가 6개월을 굶주림 속에 헤매다가 내려왔다. 내려와서 바로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나이가 어려 겨우 풀려났다. 말도 못 하고 지내다가 4.19로 잠시 언론자유가 허용되자 지방 신문사에 자신의 억울함을 신고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5·16 쿠데타가 일어났고 지역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담당 형사를 만났단다. 그 형사가 하는 말, "야 이놈아 너 왜 쓸데없는 짓을 해? 이제 세상이 바뀌었어.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아."
이런 세월이 70년 흐른 것이다.
이런 세월이....

4.3 폭도, 좌경용공분자, 5.18 폭동.... 독재 세력에 저항했던 모든 사람에게 빨갱이 프레임을 씌워 가차 없이 처단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해 온 세월이었다. 예전에 민주화 시위 때는 앞에 전경만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을 기점으로 수구 세력들도 대오를 갖춰 길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집회를 가나 보수 진보가 이웃하여 시위를 한다. 전혀 이념 문제로 보이지 않는 위안부 집회에서조차 반대 세력이 와서는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난리를 친다. 물론 시위를 방해하기 위해 나온 측면이 강하지만, 때로는 독자적으로 시위를 하기도 한다. 민민대결이 정착한 것이다. 이전에는 경찰력만으로 대처했지만 촛불시위, 특히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후로 보수세력은 경찰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민민대결로 국면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치가 팽팽해지면 내전의 양상을 띠게 된다. 만약 두 시위대 간에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반드시 군대가 개입하게 되어 있다. 박근혜 탄핵 때도 군부는 내부적으로 진압 계획을 세웠다가 세불리를 느끼고 폐기한 바가 있다.
나는 이참에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를 ‘내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보수세력은 이쪽을 ‘좌빨’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그냥 프레임일 뿐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내전을 해 온 두 세력은 ‘파시스트 세력’ 대 ‘리버럴 세력’이었다. 리버럴 세력에는 온갖 종류의 좌파도 포함되어 있지만 숫자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파시스트 세력은 소수의 좌파를 리버럴 세력의 대표 주자로 언풀을 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로 정확히는 1930년 이후로 파시스트의 가장 강력한 적은 공산주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보루가 무너진 이후 공산주의 세력은 소수로 전락하여 리버럴 세력에 흡수된다. 한국 파시스트 세력의 불행은 1930년대의 프레임을 9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 변화에 맞지 않으니 늘 억지와 맹신에 의존한다. 문제는 이 대결 상태 또는 내전을 여하히 극복하느냐 이다. (계속됨)
이 글은 황대권님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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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나는 촛불집회에 가기 전에 여의도 국회의원 대회의실에서 상영된 <돌들이 말할 때까지>라는 제주 4.3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갔다. 내년에야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영화이다. 4.3으로 인해 징역을 살고 나온 할머니들에 대한 최초의 인터뷰이다. 할머니들의 알아듣기 힘든 발음 사이로 흘러나오는 원한이 가슴을 후벼팠다.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의해 죽거나 잡혀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분들이다. 70년이 지나서 재심을 청구했는데 결과는 ‘공소기각’이다. 재판기록이나 공소장 같은 기록이 아무것도 없어 ‘무죄’도 못 때린다나. 그냥 잡아다가 형무소로 집어넣었는데 다행히 입소할 때의 신상기록이 있어 살아계신 분들을 찾아내 재심을 신청한 것이다. 기록에 나와 있는 사람만 2,5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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